갑자기 부모님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헛것을 보거나, 밤낮이 바뀐 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면 누구나 크게 당황할 것입니다. 이는 흔히 치매로 오인되지만, 급성으로 나타나는 의식 장애인 ‘섬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섬망은 다양한 신체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뇌 기능의 일시적인 혼란 상태로, 조기에 정확한 원인을 찾아 적절히 대응하면 대부분 호전될 수 있는 질환입니다. 따라서 섬망치료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환자의 빠른 회복과 예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섬망과 치매를 혼동하지만, 이 둘은 발병 속도와 증상의 지속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섬망은 보통 수술, 감염, 약물 부작용 등으로 인해 수 시간에서 수일 내에 갑작스럽게 발생하며, 하루 중에도 증상의 기복이 심한 특징을 가집니다. 반면 치매는 수개월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며, 한번 발생하면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병동에서 만나는 어르신들, 특히 큰 수술을 받으신 분들에게서 섬망은 생각보다 흔하게 관찰되며, 이때 보호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섬망, 정확히 무엇이고 왜 발생할까요?

섬망의 정의와 주요 증상

섬망은 의학적으로 ‘급성 혼돈 상태(acute confusional state)’로 정의되며, 가장 핵심적인 증상은 주의력 저하와 인지 기능의 전반적인 장애입니다. 환자는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시간, 장소,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지남력’ 상실을 겪게 됩니다. 또한, 잠을 못 자고 안절부절못하거나 환시(헛것을 보는 것), 피해망상과 같은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증상들은 하루 중에도 여러 번 변동하는 양상을 보이며, 특히 밤에 악화되는 ‘일몰 현상(sundowning)’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섬망과 치매의 주요 차이점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분 | 섬망 (Delirium) | 치매 (Dementia) |
|---|---|---|
| 발병 속도 | 급성 (수 시간 ~ 수일) | 만성적, 점진적 (수개월 ~ 수년) |
| 주요 증상 | 주의력 저하, 의식 수준의 변화 | 기억력 저하가 주로 나타남 |
| 증상 경과 | 하루 중 변동이 심함 |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며 서서히 악화 |
| 회복 가능성 | 원인 치료 시 대부분 회복 가능 | 회복이 어렵고 진행을 늦추는 것이 목표 |
섬망을 유발하는 다양한 원인들

섬망은 단일 질환이 아니라 여러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증후군입니다. 가장 중요한 섬망치료의 첫걸음은 바로 이 원인을 찾아 교정하는 것입니다. 흔한 원인으로는 감염(폐렴, 요로감염 등), 탈수, 전해질 불균형, 특정 약물(수면제, 항히스타민제, 마약성 진통제 등)의 사용이나 금단, 수술 후 상태, 중추신경계 질환(뇌졸중, 뇌종양 등), 그리고 심한 통증 등이 있습니다.
특히 고령의 환자는 뇌 기능이 저하되어 있고 여러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아 섬망 발생의 고위험군에 속합니다. 병원이라는 낯선 환경, 수면 부족, 신체 활동의 제한 등도 섬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입원한 노인 환자의 경우, 사소한 변화에도 주의를 기울여 섬망 발생을 조기에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섬망치료의 핵심, 비약물적 접근법

섬망치료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원칙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비약물적 접근입니다. 환자의 불안을 줄이고 혼란을 최소화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다각적인 비약물적 중재가 섬망 발생률을 4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안정적인 환경 조성의 중요성

환자가 있는 공간을 최대한 안정적이고 친숙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밤과 낮을 구분할 수 있도록 낮에는 창가의 커튼을 열어 햇빛이 들어오게 하고, 밤에는 은은한 조명을 켜두어 갑작스러운 어둠으로 인한 공포감을 줄여줍니다. 또한, 과도한 소음을 차단하고, 환자에게 익숙한 물건이나 가족사진 등을 곁에 두어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지남력 유지와 인지적 자극

섬망 환자는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감각을 잃기 쉽습니다. 따라서 보호자는 반복적으로 지금이 몇 시인지, 오늘이 며칠인지, 이곳이 어디인지를 차분하고 명료하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시계나 달력을 잘 보이는 곳에 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시력이나 청력이 저하된 환자의 경우, 안경이나 보청기를 반드시 착용시켜 외부 정보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신체적 안정과 영양 관리

적절한 영양과 수분 공급은 뇌 기능 회복에 필수적입니다. 탈수는 섬망의 흔한 원인이므로 환자가 물을 충분히 마실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또한, 가능하다면 낮 시간에 가벼운 신체 활동이나 재활 치료를 통해 신체 기능을 유지하고 수면-각성 주기를 정상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약물적 섬망치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이유

비약물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초조함이나 공격적인 행동이 너무 심해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경우, 제한적으로 약물 치료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섬망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은 증상을 완화시키는 목적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부작용의 위험이 따르므로 반드시 전문가의 판단하에 신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주로 소량의 항정신병 약물이 사용되며, 할로페리돌(Haloperidol)이나 리스페리돈(Risperidone), 퀘티아핀(Quetiapine)과 같은 비정형 항정신병 약물이 처방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약물은 환자의 불안과 환각, 망상 등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과도한 진정, 낙상, 추체외로 증상(파킨슨병 유사 증상)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최소 용량을 최단 기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약물(로라제팜 등)은 특정 경우(알코올 금단 섬망 등)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섬망을 악화시킬 수 있어 사용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 약물 종류 | 주요 특징 및 주의사항 |
|---|---|
| 정형 항정신병 약물 (예: 할로페리돌) | 가장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약물로, 주사제 투여가 가능함. 추체외로 부작용 및 심장 관련 부작용 위험에 주의해야 함. |
| 비정형 항정신병 약물 (예: 리스페리돈, 퀘티아핀) | 정형 약물에 비해 부작용이 적어 고령 환자에게 선호될 수 있음. 저용량으로 시작하여 신중하게 증량함. |
| 벤조디아제핀 (예: 로라제팜) | 알코올 금단 섬망 외에는 일반적으로 권장되지 않음. 오히려 섬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음. |
보호자와 가족의 역할: 함께 극복하기

섬망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가족들은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족의 지지와 적절한 대응이 환자의 회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환자의 혼란스러운 말과 행동은 병으로 인한 증상임을 이해하고, 비난하거나 맞서 싸우기보다 차분하고 안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환자와 대화할 때는 짧고 간결한 문장을 사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하며, 필요하다면 같은 말을 반복해서 안심시켜 주세요. 의료진에게 환자의 평소 성격이나 생활 습관, 최근 변화 등을 상세히 공유하는 것은 섬망의 원인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간호 과정에 가족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환자에게 익숙한 환경을 제공하고 정서적 지지를 보내는 것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결론적으로, 섬망은 갑작스럽게 찾아와 환자와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지만, 원인 질환의 치료와 함께 비약물적 치료를 중심으로 한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충분히 회복될 수 있는 질환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섬망을 조기에 인지하고, 환자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며, 의료진과 긴밀히 협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환자는 혼란의 시간을 무사히 지나 다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섬망은 치매와 어떻게 다른가요?
A1: 가장 큰 차이점은 발병 속도와 회복 가능성입니다. 섬망은 갑자기 발생하고 원인을 치료하면 대부분 호전되지만, 치매는 서서히 발생하여 점차 악화되는 퇴행성 뇌질환입니다.
Q2: 섬망은 완치가 가능한가요?
A2: 네, 섬망을 유발한 기저 원인(감염, 약물, 탈수 등)이 해결되면 대부분 수일 내에 완전히 회복됩니다. 다만, 일부 고령 환자에서는 회복이 더디거나 불완전할 수 있으며, 섬망을 겪은 후 인지 기능 저하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Q3: 섬망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치료는 무엇인가요?
A3: 원인 질환을 찾아 치료하는 것과 동시에,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환자를 안심시키는 비약물적 치료가 가장 중요합니다. 약물 치료는 심한 증상을 조절하기 위해 보조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Q4: 가족이 섬망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A4: 환자 곁에서 차분하고 안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반복적으로 시간, 장소,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환자에게 익숙한 물건을 가져다주거나, 안경이나 보청기를 착용시켜 혼란을 줄여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의료진과 환자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Q5: 섬망 치료 약물은 안전한가요? 부작용은 없나요?
A5: 모든 약물은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섬망에 사용되는 항정신병 약물은 과도한 졸음, 낙상, 파킨슨병 유사 증상, 드물게는 심장 부정맥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의사의 처방에 따라 최소한의 용량을 단기간 사용해야 하며, 부작용 발생 시 즉시 의료진에게 알려야 합니다.